"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왔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백 년 전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정경이었다. 다 끝난 잔칫상 모양 어수선하고 심란하기까지 한 파한 뒤의 장거리.
허기에 조여드는 허리를 막걸리 한 사발로 달래놓고 주섬주섬 짐을 꾸려 나귀등에 싣고, 다음 장을 향해 떠나야 하는 장꾼들, 나귀 목에 짤랑대는 방울 소리가 귀여운 것이 오히려 애처롭게 마음을 간지르는 풍경이었다.
"밤이새면 장거리에 풀어야할 황아짐 / 별빛잡고 길을물어 가야할 팔십리란다 / 나귀목에 짤랑짤랑 향수피는 방울소리 / 구름 잡고 도는 신세 발길이 섫다
경상도다 전라도다 충청도에 강원도 / 오양간에 나귀몰아 조바심 몇 십년이냐 / 길 동무의 입을 빌어 더듬어 본 추억속에 / 말만 들은 옛 고향에 처녀를 본다
황혼 들면 주섬주섬 다음 장을 손꼽아 / 선잠 깨인 벼갯머리 세월은 주마등이냐 / 동쪽에서 잔을 들고 서쪽에서 사랑 푸념 / 울고 가자 당나귀야 방울 울리며"(고려성 작사 홍갑득 작곡 1940)
'마상일기'는 경쾌한 리듬과 곡조로 나귀등에 짐을 싣고 장에서 장으로 떠도는 장꾼의 신세를 잘 묘사한 '진방남'의 대표곡이다.
이 노래는 1940년 태평레코드사에서 발표가 되었고 고려성 작사 홍갑득 작곡으로 만들어졌다.
노래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1930년대 하반기로 접어든 해의 어느날, 한 청년이 작곡가 이재호를 찾아 태평 레코드사 문예부로 들어섰다.
고향은 대구, 이름은 홍갑득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그는 자작 가요의 악보라면서 느닷없이 오선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이재호는 그대로 쓸 만하다고 느꼈던지 곡을 '고려성'에게 돌려 작사를 의뢰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이 '마상일기', 노래는 당시 태평 레코드사에서 욱일승천의 기세에 있었던 '진방남'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 무렵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녹음시설이 없었던 터라 모든 가요의 녹음은 일본으로 건너가 해오고 있었다.
당시 녹음차 일본 오사카에 있는 본사 스튜디오로 가는 길에 비 오는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에서 악상을 얻어 작곡가 이재호가 편곡해 녹음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방송에서 들을 수 있는 '마상일기'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정서를 잘 묘사한 작품으로 여전히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 진방남의 '마상일기'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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