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 너의 가는 곳 그 어디이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 나 죽으면 고만일까 / 행복 찾는 인생들아 /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 나 죽으면 고만일까 / 행복 찾는 인생들아 / 너 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 세상의 것은 너의 게 허무니 /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 나 죽으면 고만일까 / 행복 찾는 인생들아 / 너 찾는 것 허무(이바노비치 작곡, 윤심덕 노래, 1926년)
위 노랫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악가이며, 유행가 가수로 이름 높았던 윤심덕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작 '사의 찬미' 이다.
윤심덕은 1897년 평양에서 태어나 경성 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했다. 경성 사범 부속학교 음악 교사로 재직하다가 일본 우에노음악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녀는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성악을 전공한 인텔리(지식층)다.
하지만 윤심덕은 학교에서 연극 활동을 하던 중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다니던 동갑내기 유부남 김우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결국 1926년 8월 3일 '사의 찬미'를 녹음하고 돌아오던 길에 현해탄 관부 연락선 덕수환(德壽丸)갑판에서 몸을 던져 동반 자살했다.
그때 함께 투신한 김우진이 윤심덕의 정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물론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다 타살이다 두 사람은 죽지 않았다 이탈리아에 가서 잘살고 있다 뭐 이런 다양한 풍문들이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윤심덕과 김우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그런 증거는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두 사람의 동반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말 큰 화제가 되었는데 신문에 한 면을 다 관련 기사로 차지할 만큼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기도 했다. 그럴만한 것이 김우진은 처자가 있는 몸이었고 윤심덕은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 죽음은 화제가 안될 수가 없는 사건이었다.
특히 이 정사 사건은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예정에도 없던 곡을 그가 자진해서 녹음했다는 '사의 찬미'는 크게 유행하여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루마니아의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h, 1845~1902.)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물결' 곡조에 윤심덕이 가사를 붙인 이 애절한 노래는 정사의 전설과 함께 실의에 찬 민중들의 가슴을 쳤다. 새까만 제비표 레코드에서 흐느끼듯 흘러나오는 단음계의 구슬픈 선율을 그들은 목메인 소리로 따라 불렀다.
윤심덕이 사의 찬미를 녹음한 곳은 일본 오사카에 있는 일동 축음기 주식회사였다. 이 '사의 찬미' 외에도 윤심덕은 많은 노래를 일동에서 녹음 했고 이 노래들은 윤심덕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일제히 광고가 나오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세상에 나오게 된 비극적인 노래 '사의 찬미'는 음질은 안 좋고 가수의 창법도 요즈음 기준으로 그렇게 세련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종의 진정성 같은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특히 1969년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나왔다. 신성일(김우진 역), 문희(윤심덕 역) 주연의 <윤심덕>이 제작되었으며, 그 후로 뮤지컬, 연극 등으로 만들어져 재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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