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를 흔히 '뉴 뮤직과 MTV'의 시대라고 한다.
먼저 뉴 뮤직이란 1970년대 말 뉴욕의 댄스 뮤직홀 등지를 중심으로 펑크록에서 발전, 1980년대에 뉴웨이브 ( New Wave ) 물결로 먼저 영국에서 그 중심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으로 역수출되어, 1960년대에 비틀스를 위시한 리버풀 그룹들의 침공 아래, 1980년대에 들어 두 번째로 영국인이 미국 시장을 침공한다는 뜻에서 이른바 세컨드 브리티시 인베이션이란 현상을 낳으면서 팝 씬에서 맹위를 떨치게 된다.
뉴 뮤직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전자비트로, 당시 세계적으로 뉴 뮤직 붐을 이루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음악계는 영·미의 팝뮤직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는 MTV의 등장이 뉴 웨이브의 출현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MTV의 시초는 1981년 8월 미국의 어느 케이블 방송사는 24시간 동안 음악만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MTV(Music Television)이다.
1975년 일본의 소니사에 의해 비디오가 대중화될 때부터 MTV의 출현은 이미 예상되었는데, 디스크의 소리에 TV의 화면을 접목한 것이었다.
노래를 듣고, 거기에다 보기까지 하니 음악의 내용도 상당히 변하게 되었다.
듀란듀란 ( Duran Duran ), 컬처 클럽 ( Culture Club ), 디페쉬 모드 ( Depeche Mode ) 등이 대표적인 예의 밴드였다. 1970년대 통신기기의 대변혁인 비디오가 음악에 미친 영향은 바로 MTV의 출현이었다.
어쨌든 뉴 웨이브는 1970년대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1980년대의 요구에 맞춘 것이라고 보는 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대중적인 기반은 1981년 블론디였서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블론디 ( Blondie ), 폴리스 ( The Police ), 유리스믹스 ( Eurythmics ), 티어스 포 피어스 ( Tears for Fears), ABC, 아하 ( A-ha )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하게 된다.
특히 감각적인 사운드, 현대적인 감각의 화장 및 분장 그리고 환상적인 패션 등이 그들의 개성이기도 했다. 1970년대 말의 파괴적인 펑크 시대 이후 찾아온 대중음악, 그것이 뉴 웨이브였다.
■ 소리와 영상 그 황홀한 입맞춤 '레이저 디스크 (Laser Disc)'

디스크와 TV의 만남이 MTV였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각과 청각의 동시 해결이라는 요구는 풀렸지만, 그 질(質)이 문제였다.
먼저 원음(原音)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자 했다. 그것이 CD (CompactDisk)였다.
일본의 소니사와 네덜란드 필립스사는 1982년 CD 발매를 개시한다. 광통신(光通信)의 발전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화면도 실물에 가까운 생생한 것을 가능케 했다. 그것이 LDP(Laservision Disk Player)이다. 1983년 일본의 파이오니어사는 LDP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MTV가 제공하는 음악의 발전 단계가 LDP이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생생한 소리와 화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비디오의 등장처럼 LDP가 음악계의 흐름을 뒤집진 못하고 현재는 사라진 단계가 되었다.
■1980년대 전설 마이클 잭슨 그리고 팝(Pop) 스타 이야기


1980년대를 보낸 팝 팬들에겐 지금도 'Billie Jean'의 전주 부분이 귀에 생생할 것이다.
1983년 팝계를 휩쓸어 버린 슈퍼스타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마이클 잭슨 ( Michael Jackson )이다.
당시만 해도 흑인 가수의 방영을 꺼리던 MTV에 그는 백인에 가까운 성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영화감독 존 랜디스 '블루스 브라더스(Blues Brother)'의 감독을 영입하여 만든 비디오 'Beat It'은 마이클 잭슨 ( Michael Jackson )을 슈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타운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보여준 그의 춤 솜씨와 퀸시 존스에 의해 프로듀스된 앨범 'Thriller'의 펑키한 사운드, 그리고 백인에 가까운 분장 등은 MTV의 장점을 가장 완벽하게 이용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 앨범에선 싱글 톱10이 7곡이었는데, 덕분에 마이클 잭슨은 그해 그래미상 8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대 하면 빼어놓을 수 없는 가수를 꼽으라면 바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 Bruce Springsteen )'이다.
1960년대 미국의 상징 하면 아폴로 우주선과 포드 자동차였지만, 1980년대 미국의 상징은 마약과 섹스, 에이즈였다.
그렇게 문화적으로 병폐해가는 미국을 음악을 통해 새롭게 탄생시키자는 신애국주의 메시지가 담긴 'Born In The U.S.A' 앨범으로 대중적인 기반을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음반 표지에 노동자 복장 차림의 사람이 성조기를 향해 오줌을 누고 있는 듯한 자세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본인은 강력히 부인하기도 한 문제의 앨범이었다.


한편으로는 뉴 웨이브의 열기, MTV의 등장 그리고 아티스트의 개성 등이 그 시대와 딱 들어맞은 뮤지션이 있었으니 바로 듀오 왬 ( Wham!)이었다.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로 구성된 이 영국 듀오는 1984년 '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싱글 차트 1위에 올려놓으며 인기 대열에 올랐다.
1980년대 최고의 여성 가수로 마돈나 ( Madonna )를 지목하기에 주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85년 마돈나(Madonna)는'Like A Virgin'으로 전 세계 팝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프로듀서는 듀란 듀란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나일로저스. 미모와 섹시함 그리고 가수가 지녀야 할 가창력과 춤 등이 그녀를 슈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MTV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녀는 MTV 등장 이후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게다가 1980년대 팝 음악계 가장 큰 뉴스는 뭐니 뭐니해도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구장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던 '라이브 에이드'(Live Aid)였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이었다.
장장 16시간의 공연, 200여 명의 아티스트 출연, 430억의 자선기금, 세계 140개국에의 15억 시청자 등등 종래의 모든 기록을 깨버린 행사였다.

영국의 록 그룹 붐 타운 래츠의 리더 봅 겔도프는 이 행사를 개최한 공로로 그 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라이브 에이드'는 우드스톡 이후 최대의 공연이었으며, 이 행사에 자극받아 해리 벨라폰테는 '우리는 곧 세계'(We Are The World)라는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다.
어쨌든 군사정권 아래 고달픈 나날이었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1980년대가 21세기보다 훨씬 예술·문화·스포츠면에서 융통성 있고, 격정적이었으며, 게다가 호의적인 사람들이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싶다.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Live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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