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 google00ba2143d583234e.html '추억으로 가는 음악여행'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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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는 음악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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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라디오 스타 디제이(DJ) 이야기 1980년대! 지금처럼 외국 직배사에서 신보가 속속 발매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가요보다 팝의 시장이 크던 시절 거의 유일한 팝 음악의 전문잡지로서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월간 팝송이 전부였다. 특히 그 시절 청소년들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해박한 팝 지식과 숨 막히듯 진지함이 넘쳐나는 팝 음악을 접할 수밖에 없었고 그중에서도 김광한씨와 김기덕씨의 프로그램은 “1980년대 청소년들에게 팝 음악의 창구 기능을 했던 대표적인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김광한(1946∼2015)씨의 팝스 다이얼과 김기덕씨가 진행했던 2시의 데이트는 방학에 맞춰 상반기, 그리고 하반기 인기팝송을 총망라해서 특집으로 구성했는데, 항상 어느 방송을 들을 것인지를 놓고 갈등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1980..
최다 리메이크된 한국 영화 한국 영화 중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영화는 무엇일까? 아마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또는 일 듯하다. 한편으로는 이른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은 아니지만 흥행에 성공하여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원작 이성재)이었다. 고전을 제외한 최다 리메이크인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최소 9회의 리메이크가 있었다. 이 작품이 처음으로 선보인 것은 1963년 8월 동아방송의 라디오 연속극이었다. 인기에 힘입어 그해 12월에 동명으로 영화(최훈 감독)가 발표되었으며 1968년(고영남 감독)과 1981년(변장호 감독)에 리메이크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원작은 이지만 제목을 달리하여 동시기에 계속 리메이크 되면서 경쟁하였는데 그 유명한 이 주인공이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 ..
귀여운 올드팝 델 섀넌(Del Shannon)의 Runaway 델 섀넌(Del Shannon)은 미국 출신의 팝가수이다. 그의 대표곡 'Runaway'는 1961년 발표되어 4주 동안 빌보드 차트 #1 을 차지했던 곡이다. 특히 이 노래를 듣노라면 성량이 풍부한 가수라든지 목소리가 좋다든지 하는 일반적인 느낌은 받을 수 없다. 어릴 때 짓궂은 장난으로 항상 친구들을 괴롭히던 악동의 느낌이랄까. 원래는 보컬리스트가 아니었다. 클럽에서 일하던 중 보컬이 갑자기 펑크를 내자 대타로 마이크를 잡았는데 청중의 반응이 예상외로 뜨거워 그때부터 보컬리스트가 됐다고 한다. ■델 섀넌(Del Shannon)의 Runaway 감상하기
1980년대 유행했던 팝음악에 관한 짧은 정리 1980년대를 흔히 '뉴 뮤직과 MTV'의 시대라고 한다. 먼저 뉴 뮤직이란 1970년대 말 뉴욕의 댄스 뮤직홀 등지를 중심으로 펑크록에서 발전, 1980년대에 뉴웨이브 ( New Wave ) 물결로 먼저 영국에서 그 중심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으로 역수출되어, 1960년대에 비틀스를 위시한 리버풀 그룹들의 침공 아래, 1980년대에 들어 두 번째로 영국인이 미국 시장을 침공한다는 뜻에서 이른바 세컨드 브리티시 인베이션이란 현상을 낳으면서 팝 씬에서 맹위를 떨치게 된다. 뉴 뮤직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전자비트로, 당시 세계적으로 뉴 뮤직 붐을 이루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음악계는 영·미의 팝뮤직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청춘을 함께한 음악다방의 추억 그리고 디제이가 아련해진다. '오늘은 왠지 샹송이 듣고 싶어라. 샹송 가수 살바토레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를 신청하셨네요. 눈 내리는 겨울밤,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오늘도 어떤 뮤직박스에서 디제이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음악을 틀고 있는가요? 옛날에는 그랬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마땅히 놀 공간이 없었다. 당구장 이외에는 시내에서 특별히 시간을 '죽일' 거리가 없던 시절. 젊은이들은 가끔 친구들과 함께 음악다방에 들락거렸다. 특히 염색한 군복과 막걸리가 젊은이들의 멋이었고, “체인징 파트너” 같은 팝송 히트곡 하나쯤은 영어 가사로 그럴듯하게 부를 줄 알아야 멋쟁이로 행세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특별히 음악을 잘 알거나 감상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음악 ..
1960년대 국민 율동, '트위스트 춤' 1960년대 국민 율동 '트위스트(Twist)'는 1960년대초 미국에서 탄생한 사교댄스로 파트너 없이 혼자서도 출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빠른 기세로 유행되었던 춤이다. 1950년대 맘보 스타일의 붐 이래, 대중음악계는 새로운 리듬의 개척을 모색하고 있었지만, 최대의 성공을 거둔 리듬은 1960년에 등장한 트위스트 붐일 것이다. 양다리를 약 30㎝ 정도의 간격으로 열어, 무릎을 가볍게 굽혀 엉덩이를 다른 곳으로 비틀어 움직이면서 있는 대로 로큰롤 리듬에 맞추어 허리를 흔드는 단순 명쾌한 댄스이다. 특히 1960년 리듬 앤 블루스 가수 처비 첵커(Chubby Checker)가 '더 트위스트'란 노래를 이런 몸짓으로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널리 퍼졌다. 참고로 이는 식당의 종업원이었던 처비 체커가 삶은 ..
고고춤과 야외전축, 197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 한 때 고고 춤이 유행하던 때에는 친구들과 놀러 가거나 소풍이라도 갈 때면 통기타나 야전(야외전축, 휴대용)은 빠지지 않는 필수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흔히 '야전'이라고 줄여 불렀던 '야외전축', 1970년대는 이 야전에 속칭 '빽판'이라 불렀던 음반을 걸어놀고 고고춤을 추는 것이 유행이었다. 야전에 '빽판(해적판)'을 걸어놓고 춤추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절, 이 야외전축의 턴테이블에서는 한창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던 미국 밴드 C.C.R의 Hey Tonight, Molina 등을 연방 돌려 대는 시기였다. 1960년대 트위스트가 젊은이들 음악 문화라고 이야기한다면 70년대는 바로 고고가 유행하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국내 고고의 대중적인 유행에 불을 댕긴 것 중 하나는 바로 야전이 아니었을까? 이..
1960년대 최고의 인기그룹 '더 벤처스(The Ventures)' 더 벤처스(The Ventures)는 1958년 미국 시애틀의 두 노동자 돈 윌슨과 밥 보글에 의해 1958년 워싱턴주 터코마에서 결성된 미국의 인스트루멘탈 록 밴드(Instrumental Rock Band)이다. 이 밴드는 1960년대에 미국과 전 세계에 일렉트릭 기타를 대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역대 최고의 인기를 기록한 인스트루멘탈 록 밴드(Instrumental Rock Band)이다. 그들은 단순한 곡들을 서프 기타 사운드 스타일의 음악에 접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1961년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한 벤처스 악단은 그들의 앨범 중 40장 이상이 차트에 오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연주 밴드이다. The Ventures(더 벤처스)는 펜더 기타로 서프나 컨트리, 그리고 환각적인 음악을 ..
시각장애의 아픔을 딛고 인기와 존경을 얻은 가수 레이 찰스(Ray Charles) '나는 음악을 가지고 태어났다. 음악은 나의 일부분이었다. 피와 같이 나에게 있어 음악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음식이나 물과 같이' '레이 찰스(Ray Charles / 1930.9.23~2004.6.10)'는 오늘날 세계 팝 팬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 중의 한 명이다. 그가 노래한 ‘ Georgia On My Mind ' 는 조지아주의 주 노래로서 인정을 받을 만큼 현재도 사랑을 받고 있다. 위대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겸 싱어 레이 찰스(Ray Charles)는 가스펠 음악과 컨트리나 팝까지도 절충시키는 것을 비롯해 솔이나 록, 하드 밥 속에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냇킹콜'이나 위대한 블루스 피아니스트 '찰스 브라운' 등의 영향으로 레이는 그들의 음악이 내포하고 있던 에센스를 리듬..
유로 디스코 신을 주도했던 보니엠(Boney M)과 떠나는 추억의 디스코 여행 1976년 독일의 팝뮤직계가 배출한 슈퍼 그룹인 보니엠(Boney M)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전반에 걸쳐 활약한 전설적인 디스코 그룹이다. 당시 회오리바람 같은 디스코 열풍을 타고 유럽 및 미국의 디스코 클럽을 석권했다. 1명의 남성과 3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이들은 악기를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 하는 것이 특징이며 서인도 제도 특유의 창법을 구사하는 그룹이었다. 원래는 1975년에 싱어송라이터이며 프로듀서였던 Frank Farian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실은 Frank Farian이 'Baby Do You Wanna Bump'라는 곡을 Boney M이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발표 1976년 노래가 의외의 대성공을 거두자 오디션을 통해 네 명의 서인도제도 출신 흑인들을 선발 (남성1인 /여성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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