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 google00ba2143d583234e.html 가수 박단마 아이고나 요 맹꽁아 (맹꽁이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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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가수 박단마 아이고나 요 맹꽁아 (맹꽁이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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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단마(朴丹馬, 1921~1992) 사진 출처: 유튜브 캡쳐

‘열무김치 담을 때는 님 생각이 절로 나서/설움 많은 이 팔자를 흔들어 주나/장마통에 맹꽁이야 너는 왜 울어/음∼음∼ 안타까운 이 심사를 흔들어 주나/맹이야 꽁이야 너마저 울어/아이고나 요 맹꽁아, 어이나 하리. 보리타작하는 때는 님 생각이 절로 나서/걱정 많은 이 신세를 흔들어 주나/논두렁에 맹꽁이야 너는 왜 울어/음∼음∼ 눈물짓는 이 심사를 흔들어 주나. 독수공방 깊은 밤에 님 생각이 절로 나서/장마통에 멍청스레 흔들어 주나/이 밤중에 맹꽁이야 너는 왜 울어/음∼음∼ 잠 못드는 이 심사를 흔들어 주나.’ (1938년, 이부풍 작사·형석기 작곡)

위 노랫말은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1950년대까지 활동한 가수 박단마의 대표곡 ‘아이고나 요 맹꽁아(맹꽁이 타령)이다

1938년 빅타레코드사에서 출반된 이 노래는 서양음악적 색채가 가미된 박단마의 개성이 돋보이는 노래다. 작사는 이부풍, 작곡은 형석기가 맡았다.

박단마 특기인 비음의 창법으로 묘하게 맹꽁이의 익살스러운 소리를 연상시켜 주었다.

가수 박단마(朴丹馬, 1921~1992) 사진 출처: 유튜브 캡쳐


박단마는 당시 데뷔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인으로 가요계의 귀염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노래뿐만 아니라 넌센스 코미디나 즉석 연극도 잘하며 무대에 서면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재주 덩어리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59년도에 박재란이 '맹꽁이 타령'으로 제목을 바꾸고 맘보리듬으로 불러 크게 히트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박재란을 '맹꽁이 타령'의 원곡가수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박재란이 '맹꽁이 타령'으로 제목을 바꾸고 맘보리듬으로 불러 크게 히트한 음반 표지( 박재란양 홈런집 10인치-1960년 오스카 레코드사)


과거 초봄부터 여름까지 시골에 가면 맹꽁이들의 극성스러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시골 처녀가 사랑하는 임을 생각하며 싱숭생숭한 마음을 걷잡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정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가장 한국적인 광경이라 하겠다.

이 노래가 히트하면서 당시 박단마는 황금심과 함께 빅타 레코드사의 간판스타로 군림했다.

박단마 음반 표지

박단마(朴丹馬)는 1921년 개성에서 출생했다. 어렸을 때부터 연극무대에 섰고 1934년에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노래를 불렀다. 1937년 빅타레코드에서 '상사 7백리', '내가 있어서 정말'로 데뷔했다.

1938년 17세에 부른 이부풍 작사 전수린 작곡의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가 히트했고, 이후 '아이고나 요 맹꽁아', '슈샤인 보이'를 발표하면서 큰인기를 끌게 된다.

악극단 시절. 왼쪽부터 박단마, 신카나리아. 백설희 / 사진 출처:유튜브 캡쳐


그녀는 '슈샤인 보이'를 부른 후 1950년대 미군 헌병장교와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갔다. 하지만 1957년 귀국을 하고, 박단마그랜드쇼단을 구성해 전국순회공연을 한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간 박단마는 1992년 향년 71세로 애틀랜타에서 영면했다. 심장마비가 원인이었다.

▶ 박단마 아이고나 요 맹꽁아

 


▶ 박재란 맹꽁이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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