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江山) 제일의 춤꾼'으로 불리며 진주검무로 국가 무형문화재(제12호)에 지정되는 등 명성을 날렸던 춘당 김수악 선생!
그는 생전에 열정적인 예술혼을 불사르며 우리나라 전통 가무악 계승·발전에 큰 획을 그은 국악인이다.
김수악 선생은 1925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1933년(9세)에 진주권번에 입학해 각종 춤(검무 포함)을 비롯해 정가(시조·가곡), 판소리 5바탕(수궁가, 적벽가, 춘향가, 흥부가, 심청가), 구음, 가야금·아쟁 및 병창 등을 두루 배웠다.
김수악 선생은 1955년 그의 나이 30세 때 진주에 경상남도 최초로 민속예술학원을 개설한 이래 평생 국악 후진 양성에 헌신했다.
또한 진주검무, 진주 교방굿거리춤, 김수악 논개 살풀이춤, 김수악 살풀이춤, 장고, 그리고 헛간에 서 있던 도리깨도 춤추게 만든다는 구음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한 노력이 빛을 발해 1967년 진주검무(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초대 예능 보유자로, 1997년 진주 교방굿거리춤(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예능 보유자로 각각 지정받았다.
김수악 선생은 “예술인이 되려면 마음, 정신, 공력, 멋, 혼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을 하려는 사람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으로 정신을 키워야 한다. 그런 다음 힘들여 공을 들이면 멋이 나오고, 그 멋이 경륜이 쌓이다 보면 혼이 묻어나온다.”며 예술에 대한 뚜렷한 신념을 늘 간직했다.
그는 2009년 3월 1일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11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교방문화의 맥을 이어온 마지막 전승자, 교과사적 마지막 예인으로 불리며 국악인 사이에서 위대한 예술인, 훌륭한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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