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 google00ba2143d583234e.html 전설로 남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 ‘안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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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할 국악인

전설로 남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 ‘안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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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산조 명인 안기옥(1894~1974)

가야금 역사상 최고였다는 찬사가 전설처럼 구전되고 있는 가야금 명인 안기옥(1894~1974).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예인이자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월북 음악가‘ 이다.

 

안기옥은 1894년 전남 나주 출생이다. 꽹과리와 피리로 명성을 떨쳤던 아버지 안영길(安永吉)의 영향을 받았다.

 

1904년 이후 8살 때 김달진에게 가야금 병창을, 한숙구, 김창조 등에게 가야금과 거문고, 아쟁, 장고, 꽹과리를, 1915년에 백낙준에게는 거문고를 배웠다. 1916년부터 남원협률사를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한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여 징역을 살았고, 1926년 일본인 위안공연을 거부하여 구류를 당한 바 있다.

 

가야금 명인 안기옥(1894~1974)
가야금 명인 안기옥이 음악단장으로 활동한 최승희 무용단

특히 조선 음악의 명맥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협률사, 조선 음악연구회, 조선창극단, 한성준 조선 음악 무용연구소, 최승희 무용단의 음악단장 등 한국음악사에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활동에 참여했다.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아 성남희, 성금연, 김종기에게 가야금 산조를 전수했다.

 

1946년 월북 이후 북한 음악계의 지주이자 북한 사회의 거목으로 1947년 조선 고전악 연구소 소장, 1951년 조선 음악가 동맹의 상무위원 겸 고전음악 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안기옥의 가야금 산조는 초기산조, 허튼 가락, 후기산조로 나누어지는데, 가야금을 연주할 때 줄을 짚고 흔들어 다양한 꾸밈음을 내는 기법이 많은 남한의 산조와 달리 리듬 변화가 다채롭고 역동적인 것이 안기옥류 산조의 특징이다. 

 

■  안기옥 가야금 산조-진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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