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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국악 이야기

민중의 애환이 서린 노래, 경복궁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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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계명 산천이 밝아온다/ (후렴) 에 에헤 에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

을축 사월 갑자일에 경복궁을 이룩하세/ (후렴)

우광쿵쾅 소리가 웬 소리냐 경복궁 짓는 데 회(灰)방아 찧는 소리다/ (후렴)

조선 여덟도 유명한 돌은 경복궁 짓는 데 주춧돌감이로다/ (후렴)

경복궁 역사가 언제나 끝나 그리던 가속(家屬)을 만나나 볼까/ (후렴)

수락산 떨어져 도봉이 생기고 북악산 줄기에 경복궁 짓네/ (후렴)

위 노랫말은 서울 지역의 민요인 '경복궁 타령'으로 고종 집권 초기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 생겨난 민요로 알려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문화가 있는날 '경복궁 타령'을 열창하고 있는 김영임 명창

선소리(여럿이 서서 부르는 노래)의 하나로서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 노역 인부들의 수고스러움을 잊기 위한 노래이기도 하다.

또 노래에서처럼 힘든 노동에 대한 불만이 포함된 가사를 경쾌하고 흥겹게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다.

KBS 한국방송 국악한마당에서 경복궁타령을 열창하고 있는 소리꾼 송소희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에 병화로 소실된 후 273년 동안 복구되지 않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다.

특히 경복궁 중건 계획을 발표하여 7년여의 긴 세월 동안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중건된 경복궁 인만큼 그 당시 이에 대해서 귀천을 막론하고 원망의 소리가 자자하였다.

심지어는 도편수나 석수장이 등이 나타나 사설이 궁하면 대원군을 비방하며 아무 말이나 지껄여댔다고 한다.

워낙 큰 역사(役事)이고 보니 부역도 그렇거니와 돈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공사에 착수할 무렵인 4월은 농번기임에도 3만5000여 명을 동원했고, 공사 재원 마련을 위해 발행한 원납전과 당백전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도성을 출입하는 사람에게 통행세를 걷어 민심이 악화되었다.

원하노니 내 귀가 어두어져서 원납소리 안듣기 소원이로다

처음에는 돈 있고 넉넉한 사람에게 경복궁 중건 비용을 자진해서 바치라고 생긴 원납(願納/ 지금의 헌금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었지만, 나중에는 원납전이 원해서 내는 돈인가, 원망하며 내는 돈인가? 있고 없고를 가리지 않고 사뭇 강제로 빼앗아 가듯 백성의 재물을 털어갔다.

국립합창단 '경복궁 타령'

그래서 경복궁역사(役事)에 시달리다 못한 백성들이 '차라리 귀라도 먹어서 원납소리를 안 들었으면' 하며 이 노래를 통해 그 신세를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경복궁 타령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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