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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삶을 사는 동안 언제나 사랑이란 지병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소중한 사람"이란 아름다운 추억 하나 남기고 가버린 故 길은정 님.
자기 죽음을 미리 준비한 듯이 마지막 가는 길에 수의 대신 자신이 선택한 드레스를 입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파란색처럼 순수하고 맑으며 천재성이 빛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같은 사람." 파란색처럼 살고 싶었던 그녀... 이제 기쁨과 고통을 주었던 이승과의 인연을 끝내고 먼 길을 혼자 떠나는 그녀의 모습은 지금 내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2005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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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정은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그곳의 토박이로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거처를 옮겨 다니기는 했지만, 자신의 내면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들은 아직도 그녀를 순수한 강원도 화천 토박이 소녀로 머물러 있게 한다.
3남 2녀 중 막내였다. 길은정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평범한 환경 속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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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유일의 인쇄소를 하는 넉넉한 집안은 비교적 부유한 편에 속했으나 여느 집에 비해 전혀 별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다.
화천호수에 드리워진 산 그림자를 보면서 초등학교를 오갔다.
어린 시절 부터 집 마당에 피어나는 꽃과 오빠들이 치던 기타, 그리고 책 읽기가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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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였던 큰아버지는 거문고를 타며 시조를 읊는 분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고 음악을 무척 사랑하시던 감성적인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 쪽의 끼를 이어받아선지 그녀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섬세하고 감성적이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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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이미 다섯 살 때부터 아이가 사라져서 찾아보면 이발소에서 어른들이 귀여운 꼬마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5원씩의 관람료를 냈고 길은정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같은 노래들을 부르곤 했다.
화천을 떠나 명문 춘천여고 시절에는 피아노와 무용과 미술에도 뛰어났으며 전국 미술대회에 나가 수상한다. 특히 고운 얼굴의 여학생으로 손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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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정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해 유난히 관심을 가졌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가수들을 동경하게 되었고, 그들을 닮고 싶은 욕망이 그녀의 생각을 지배한다.
모든 것은 그녀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오빠들이 치던 기타를 어깨너머로 배워, 그 이후부터 개학을 하고 오빠들이 학교로 돌아가면 그녀는 날마다 기타를 치고 살았다.
자신의 방에는 엄마의 오래된 재봉틀과 아버지의 전축이 놓여있었다.
음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새로 나오는 음반들을 자주 사 오셨다 그걸 듣는 사람은 주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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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들이 구해다 놓은 외국의 원판들도 매일 들었다. 샹송도 있었고, 기타 연주 음반도 있었다.
확성기 앞에 귀를 늘어뜨리고 앉은 허쉬파피가 그려져 있는 LP판의 레이블은 그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친숙한 그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자신만의 삶을 그려가기 시작했던 듯싶다.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방식을 독특하게 배워서 갔고, 훗날 음악을 하게 되면서도 그러한 특징적인 요소들이 내재하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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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는 평범한 교사가 되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타고난 끼는 어쩔 수 없었던지 대학시절 서울로 올라와 우연한 기회에 삼포로 가는 길의 강은철 씨를 만났고 강은철 씨가 소개하여 김정호가 노래하던 무교동 '꽃잎' 등에서 아르바이트 통기타 가수로 활동을 한다.
그 시절은 가장 자유분방하고 중요했던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오랫동안 갈구해 왔던 자유 분방함을 마음껏 누리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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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옴니버스 앨범 '웃기는 사람 웃기지 않는 노래 -젊음 집중(신형원의 불씨, 해오라기의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에 참여해 '소중한 사람'(김미지 작사, 작곡)을 노래 한다. 그녀의 데뷔히트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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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활 속에서 그녀가 지니고 있던 선천적인 예술성도 한껏 나래를 폈다.
그동안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예술적 기질이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했고, 그러한 표현을 통해 하나의 틀을 형성하며 정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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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길은정의 길을 뒤바뀌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소중한 사람'의 홍보를 위해 음반제작자가 잡아 놓은 KBS 라디오 '가위바위보'에 출연했을 때, 당시 프로듀서 박문영은 길은정의 재능을 단숨에 알아보고는 그 이튿날 부터 MC로 기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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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가수보다는 방송인으로 더욱 인정받아 <뽀뽀뽀> <영11> <가위바위보> <가요 톱 10> <정오의 희망곡> 등 유명 프로그램의 명진행자로 이름을 날렸고 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원음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인 <길은정의 노래 하나 추억 둘>의 DJ로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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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정, 이름 석 자에서도 그녀의 독특한 개성이 짐작된다.
그녀의 부친은 길은정이란 이름을 지을 때, 그 시절 최고의 스타 성우였던 성우 '고은정'의 팬이었던 아버지는 고은정처럼 좋은 목소리를 갖고 살라고 '길은정'이라 이름 지었기 때문이다.
(참조 : 구자형의 위대한 한국 가요)
■ 소중한 사람 길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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