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 google00ba2143d583234e.html 매혹의 중저음 가수 남일해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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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매혹의 중저음 가수 남일해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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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나그네의 나침반이냐/ 항구 잃은 연락선의 고동이더냐/ 해지는 영마루 홀로 섰는 이정표/ 고향 길 타향 길을 손짓해주네

바람 찬 십자로의 신호등이냐/ 정처 없는 나그네의 주마등이냐/ 버들잎 떨어지는 삼거리의 이정표/ 타 고향 가는 길손 울려만주네



요즘 우리는 저음 가수가 귀한 시대에 살고 있다. 금속성의 날카로운 고음을 내야만 가창력이 있는 가수로 오인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고음영역은 훈련으로 도달이 가능하지만 저음은 선천적이어야 한다.

1960년대 오기택, 남상규와 함께 우리나라 저음 가수의 삼두체제를 구축했던 황금의 저음 가수 남일해는 193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9년 '비 내리는 부두'로 가요계에 입문하여 1961년 ‘이정표’의 빅히트로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월견초 작사, 나화랑 작곡의 '이정표'는 1961년에 발표되어 전쟁 후 고단한 삶을 살던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 어딜 가나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1960년대 초 부산의 태화 극장 쇼 무대에서는 7번의 앙코르를 받을 만큼 당시 많은 사람에게 큰 인기를 얻은 남일해의 대표곡으로 이정표가 갈 길을 몰라 하는 나그네에게 방향을 가르쳐 준다는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과거 말없이 길목에 서서 오가는 뭇사람과 그 뭇사람의 희비와 애환을 지켜보는 이정표는 마치 도통한 탁발승과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래도 과거 먼 길을 걷다 보면 고갯마루에 선 이정표를 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왜인지 모르는 향수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아마도 작사가인 월견초도 비바람에 시달린 만신창이의 이정표를 보는 순간 이러한 감개를 느꼈던 모양이다.

월견초는 그 이름이 가리키듯 풍류를 이해하는 경상도 사나이, 이정표까지를 작사의 소재로 잡은 것도 이러한 풍류 감각의 소치라고 하겠다.


가사의 내용에서는 직설적인 의미 이외에 또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다. 말한다면 '인생의 이정표' 같은..., 이 함축성 있는 토속적인 감각의 가사에 작곡가 나화랑이 붙인 곡은 우리가 체질적으로 즐겨 받아들이는 회고조의 트로트, 애수어린 아름다운 선율이다.


가수는 황금의 저음 가수 남일해, 그때까지 블루스를 주로 불러 그러한 것으로 굳어졌던 그의 스타일을 바꿔보겠다는 것이 작곡가의 숨은 의도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962년 라미라 레코드사 출반의 음반은 크게 히트, 남일해의 주가를 다시 한번 높였고 이 '이정표'를 1962년의 히트 넘버로 기록하게 됐다.

이정표- 남일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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