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샤쓰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 그이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이 쏠려
아~아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 / 아~아 그이도 나를 좋아하고 계실까 / 노오란 샤쓰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 어쩐지 맘에 들어 어쩐지 맘에 들어....(1961년, 손석우 작사·작곡)
1960년 작곡가 손석우가 설립한 비너스 레코드사라는 음반사가 당시 미8군의 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명숙을 기용하여 첫 녹음 곡으로 주었던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공전의 히트는 물론이려니와 작사와 작곡을 겸한 손석우를 다시 한번 주목게 했던 노래이다.
그뿐만 아니라 도저히 불가능하기만 한 가요계의 정상에 '한명숙'을 어렵지 않게 올려놓은 그녀의 '마스코트'이기도 하였다.
특히 한명숙이 부른 '노란 샤스의 사나이'는 사랑 표현에 적극적인 화자를 전면에 내세운 점, 당시로선 생소한 미국 컨트리 송풍 멜로디를 차용한 점 등이 이전 시대와 차별화된 노래였다.
6·25 이후 검게 물들인 작업복에 화려한 청춘을 가두고 살았던 당시 젊은이로서는 산뜻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대담한 서구풍의 노래였으며, 어깨춤 대신 발장단이 어울리는 트위스트의 히트작이었다.
결국, 인기의 여세에 이 노래를 영화화하게까지 만들어 '신영균','엄앵란' 주연에 한명숙이 단역으로 출연했다. 국도 극장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관객동원 15만 명이라는 흥행을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노란 샤쓰의 사나이'(1961)가 수록된 음반은 레코드점에 처음 깔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수되는 수난을 겪었다.
당시 맑고 청아한 꾀꼬리 같은 목소리만을 원했던 시대에 허스키한 목소리나 무명가수가 부른 노래여서 별 볼 일 없다는 것이 회수 이유였다. 가요관계자들조차 수준 낮은 동요 같은 노래라며 악평을 쏟아냈다.
이처럼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한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다시 살아난 것은 뜻밖에 5.16 덕분이었다.
박정희 육군 소장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국가를 통솔하면서 KBS는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에 의기소침해진 국민의 사기와 의욕을 부추기기 위해 밝고 활기찬 노래를 의도적으로 틀어댔다.
그중의 하나가 '노란 샤스의 사나이' 였던 것이다.
트위스트 리듬에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노래는 1963년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 정부의 대국민 홍보용 노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회수돼 창고에 쌓여있던 앨범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건 당연한 일.
그렇게 회수되었던 음반들은 다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당시 레코드 판매점에서는 음반만 판 것이 아니라 노란 셔츠까지 파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노란 셔츠는 당시 남성 패션의 유행을 주도했다.
'씩씩한 생김생김의 말 없는 그 사람'은 단번에 박정희를 연상시키고, '어쩐지 맘에 들어'라는 부분은 박정희와 군인들에 대한 우호적이고 끌리는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5.16 주체 세력이 국민의 반감을 완화할 수 있는 곡으로 이 노래 이상의 좋은 노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특기할 것은 우리 가요가 처음으로 세계에 얼굴을 나타내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Yvette Giraud)가 1962년 상송 보급을 위해 내한하여 이 노래를 듣고 감탄, 서울 시민회관에서 이 노래를 불러 더욱 유명해졌고, 자청하여 한국어로 녹음하여 유럽과 미국, 동남아 일대에 큰 화제를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또 1972년 4월 일본의 빅터 레코드사에서도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일본어로 녹음하기로 계약하고 하마무라 미치코를 기용했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던 '바나나 보트 송'을 불러 전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수였다. 당시 그녀가 녹음한 '노란 샤스의 사나이'는 크게 반응을 일으켜 10만 매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곡 자체가 거짓이 없고 순박한 인간성을 여실히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골목길에서는 휘파람소리, 밭 갈고 씨 뿌리는 농부, 멋진 머플러에 파이프를 입에 문 마로도스, 유치원 아이에서 할아버지, 안경낀 아빠와 부엌에서의 엄마, 온 가족 모두가 흥얼대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1960년대 한국 가요계에 흐르는 노래의 은하수중 가장 빛나던 별이었다.
▶ 가수 한명숙 '노란 샤쓰의 사나이' 감상하기
▶ 프랑스의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Yvette Giraud)의 ‘노란 샤스의 사나이’ 감상하기
▶ 일본 가수 하마무라 미치코의 '노란 샤스의 사나이'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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