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보련다
사랑도 싫다마는 황금도 싫어 / 새파란 산기슭에 달이 뜨면은 / 바위 밑 토끼들과 이야기하고 / 마을에 등잔불을 바라보면서 / 뻐꾹새 우는 곡절 알아보련다
위 노랫말은 6·25전쟁 이후 소용돌이 속에서 지친 국민 심신에 위로와 에너지를 불어 넣어준 유행가 '물방아 도는 내력' 이다.
‘물방아 도는 내력’은 6·25전쟁이 휴전된 직후에 가수 박재홍이 발표해서 공전의 히트를 한 노래이다.
발표 시기는 전쟁 이후지만 노래의 모티브는 1952년 전쟁이 한창이던 부산 임시수도에서 발췌개헌과 관련한 부산정치파동의 격변 상황(1952년 5월 25일)을 노랫말로 엮었다.
때는 1952년, 밀고 밀리는 동란의 어수선한 세월속, 국난은 어디 갔던, 혼란을 거듭하는 정국과 파쟁, 국회의원을 태운 버스가 기중기에 매달려 끌려가던 정치파동, 해골단 등의 폭력조직이 난무하는 판국이고 보니 당시 선량한 국민은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이런 때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정든 땅, 내 고향, 전원에 몸을 묻고 논밭갈이나 하면서 부질없는 시비를 등지겠다는 소망은 어쩌면 인간 본연의 생리라 하겠다.
노래는 도미도 레코드사에서 6, 25 피난 때 부산에서 녹음,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당시 손로원은 몹시 술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활달한 성품의 소유자인 그였지만 정말 나라가 되어가는 꼴에 질렸던지 주야장천 술에 묻혀있던 시절이었다.
작곡가 이재호는 스스로 귀재를 일컬을 정도의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가사의 본뜻을 충분히 살려, 고고한 선비의 감정을 나타내듯 담담한 굴곡의, 그러면서도 전원적인 취향이 물씬한 선율을 부여했다.
가수 박재홍은 1924년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했다.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1947년 서울 중앙극장에서 열렸던 콩쿠르대회에서 신인발굴의 명수 박시춘에 의해 뽑힌 가수로서 그의 구성진 목소리는 우리의 향토적인 선율을 소화하는 데 있어 일인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물방아 도는 내력'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물방아 도는 내력은' 물방아라는 단어가 맞춤법 개정을 거치면서 물레방아로 바뀌게 되고 이후에 발매되는 앨범에는 제목이 바뀌어 표기된다. 지금도 두 가지 제목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원래 노래란 가사 좋고 곡이 좋고, 가수가 좋으면 히트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것이 시대조류를 타고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며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할 때, 더욱 나아가서 그들의 풀지 못한 갈증을 풀어줄 때야 더 말할 것이 없다. 노래는 삽시간에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볐다.
여기에 놀란 것은 당시의 집권당인 자유당, 그들은 이 가사가 집권당을 비방하는 저의를 내포한 것이라고 하여 작사자인 손로원을 오너라 가거라 하며 치근거렸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수지를 단단히 맞춘 것은 도미도 레코드사였다.
암만 만들어도 주문이 밀려오는 음반 때문에 혼이 났다는 즐거운 기억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박재홍은 이 노래로 드디어 가요계의 톱싱어가 되었다.
▶ 가수 박재홍 '물방아 도는 내력'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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