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 google00ba2143d583234e.html 한국 전쟁 직후 피난의 기억을 담은 걸작 남인수 '이별의 부산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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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한국 전쟁 직후 피난의 기억을 담은 걸작 남인수 '이별의 부산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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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실린 음반 표지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 이별의 부산정거장

서울 가는 십이 열차에 기대앉은 젊은 나그네 / 시름없이 내다보는 창밖에 등불이 존다 / 쓰라린 피난살이 지나고 보니 / 그래도 끊지 못할 순정 때문에 / 기적도 목이 메여 소리 높이 우는구나 / 이별의 부산정거장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 유리창에 그려 보는 그 마음 안타까워라 / 고향에 가시거든 잊지를 말고 / 한두 자 봄소식을 전해 주소서 / 몸부림치는 몸을 뿌리치고 떠나가는 / 이별의 부산정거장 (1954, 유호(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

위 노랫말은 한국 전쟁이 끝난 뒤 서울로 돌아가는 환도 행렬의 한순간을 포착해 낸 시대의 스냅과 같은 작품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다.

오랜 전쟁 속에서 겪었던 피난살이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고 환도와 환고향, 이별의 희비가 교차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담아 큰 반향을 얻은 노래이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음반 (1954년)

가사 내용은 전쟁 직후 낯선 부산 땅에서 판잣집 피난살이를 마치고 피란지에서의 추억을 간직한 채 열차를 타고 부산을 떠나면서 부산역(부산정거장)에서 이별을 맞는 순간을 애절하게 묘사한 것이다.

박시춘 작곡, 유호 작사의 노래로 한국전 휴전 이듬해인 1954년 가요황제 남인수의 목소리로 세상에 알려졌다.

최신 꽃다발 가요집에 수록된 '이별의 부산정거장' 가사. 1955년 간행

1953년 통일의 소리는 빈 메아리가 되어갈 무렵 당시 부산역에는 200만 피란민이 고향과 새로운 터전을 찾아 환도 열차에 몸을 싣고 피난지에서의 아련한 추억을 새기며 떠나는 정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피난지 부산 삼 년의 세월은 한 많고 설움도 많았지만, 그 역경의 시절에도 아름다운 꽃은 피었고 짜릿한 사랑의 추억도, 피난 올 땐 없던 아이를 둘러업고 열차에 오르는 아낙네의 모습, 홀로 피난와서 거기서 결혼하고 부부가 되어 떠나는 사람, 그 모든 사연이 부산에 남아있었기에 당시 모든 사람은 이 노래를 즐겨 불렀고, 부르다 눈물을 짓기도 했다.

특히 몸부림치며 이별하고 기적마저 슬퍼 우는 가사 내용과는 달리 노랫가락은 빠르고 경쾌하여 희망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1961년 엄심호 감독은 이 노래 제목으로 최무룡·김지미를 주연으로 내세워 멜로 영화를 만들었다.

6·25전쟁 중 유부남 법학도 김진오(최무룡)는 처자식을 서울에 남겨두고 부산으로 와서 부산 처녀인 기생 정채옥(김지미)의 도움을 받게 된다.

최무룡, 김지미 주연 영화 '이별의 부산정거장' 포스터 (1961)

어느덧 두 사람 사이에는 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처자식을 두고 온몸으로써 그녀를 사랑할 형편이 못 되었다.

드디어 전황이 호전돼 서울이 수복되고 진오는 부산을 떠나야 할 상황을 맞는데…. 부산역에 마주 서게 된 두 사람은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 뜨거운 눈물 속에 작별을 고하는데 이 작별의 순간에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음반 판매고 10만여 장을 훌쩍 넘기는 대기록을 세우며 1950년대 내내 깨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전쟁 기간 동안 잠시 침묵했던 '가요 황제' 남인수의 건재함을 다시 확인시켜 준 곡 이기도하다.

▶ 남인수 '이별의 부산정거장' 감상하기

 

▶ 조명섭 '이별의 부산정거장'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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