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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6·25 부산 피난살이의 애환을 절절하게 그려 낸 가수 박재홍 '경상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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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아가씨 실린 가수 박재홍 음반 표지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 /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잣집에 /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고향길이 틀 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 담배장사 하더라도 살아 보세요 / 정이 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 /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 / 그래도 뼈에 맺힌 내 고장이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영도다리 난간 위에 조각달이 뜨거든 / 안타까운 고향얘기 들려 주세요 / 복사꽃이 피던 날 밤 옷소매를 부여 잡던 / 경상도 아가씨가 서러워서 우는구나 / 그래도 잊지 못할 가고 싶은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위 노랫말은 6.25 전쟁 중 이북 출신 피난 청년의 피난살이 설움을 따뜻하게 품어준 경상도 아가씨의 여심을 절절하게 그려 낸 대중가요 ‘경상도 아가씨’이다.

6.25라는 참담한 전쟁의 와중에서 당시 부산은 피난민들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판자집과 국제시장에는 하루를 연명하는 피난민들의 몸부림이 넘쳤고 그 속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은 싹텄다.

'경상도 아가씨'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가요 중에서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등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다.

이 노래는 1955년에 부산 소재 음반회사인 미도파 레코드에서 가수 박재홍이 녹음하여 크게 히트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 온 사람들의 고달팠던 삶과 떠나온 고향을 애타게 그리는 실향민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가수 박재홍 경상도 아가씨 음반

가사에 나오는 40계단은 바로 향도 부산의 명물로 한국 전쟁 시 피난민의 애환과 향수가 담겨있는 유서 깊은 장소이다.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 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이 그 주위에 판잣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였다.

특히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가수 박재홍 (1924-1989년)

쫓기어 흐르다 보니 이른 곳이 향도 부산이라, 특별히 갈 곳이 있을 리 없는 이북 출신의 피난 청년이 40계단 층층대에 기대앉아 초점 잃은 시선을 망연한 바다에 던지기 일쑤이다.

그러한 피난 청년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웠던지 경상도 사투리 아가씨가 다정한 시선으로 사연을 묻는다. 그러나 대답할 시름마저 없는 피난 청년은 먼 하늘만 바라볼 뿐 그 사념은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당시 부산 피난살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정경이 토박이 경상도 아가씨의 따사로운 정으로 해서 고향을 생각하는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노래이다.

가수 박재홍 (1924-1989년) 음반


현재 40계단은 부산 중구청이 지난 2004년 일대 거리를 문화 관광거리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40계단 입구에는 기념비와 '경상도 아가씨'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중앙에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 박재홍 '경상도 아가씨’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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