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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국악 이야기

나른한 봄날 오후에 들려오던 신민요 박부용의 '노들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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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의 대표곡 신민요 '노들강변'을 처음 발표한 박부용

노들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나 볼까/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밞은 자국/만고풍상 비바람에 몇 번이나 지어 갔나/에헤요 백사장도 못 믿으리로다/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령으로/재자가인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에헤요 네가 진정 마을을 돌려서/이 세상 쌓인 한이나 두둥 싣고서 가거라

위 노랫말은 1930년 신불출이 작사한 신민요‘노들강변’인데 문호월 작곡, 박부용 노래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 우리 음악사에 불멸의 민요곡으로 자리 잡은 노래이다.

특히 "노들강변" 하면 누구나가 우리 민요로 알만치 이 노래는 우리 정서에 완전히 녹아있는 노래가 되었다.

따라서 이 노래만큼 그 마디 마디에 우리의 멋과 풍류가 엉겨있는 노래도 드문데, 아리랑, 도라지, 천안 삼거리, 양산도와 더불어'5 대 대표민요' 중의 하나로 꼽고 있다.

경기민요의 대표곡 신민요 '노들강변' 가사지


경쾌하면서도 애조를 띠고 있는 가락에 이 세상의 한을 강물에 흘려보내려는 심정을 나타내고 있는 그 가사만 해도 그렇다.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볼까'하는 대목은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이 아쉬워 붙들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꼭 붙들어 매겠다는 욕망의 형식이 아닌, 매여나 볼까?"이라는 슬쩍 비치고 넘어가는 담백성을 보임으로써 우리의 전래적인 멋을 풍겨주고 있다.

오케이 레코드 창립 1주년 기념 특별 신보 신문광고

또 그 선율도 그렇다. 굽이굽이 멋들어지게 넘어가는 거침없는 선율은 미끈하면서도 가볍지 않는 흥겨운 멋을 지니고 있다.

이 노래가 처음 선보이기는 1934년 O.K 레코드사에 의해서였다. 당시 신문광고를 보면 오케이 레코드 창립 1주년 기념 특별 신보로 이 노래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수는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기생 박부용.

조선미인보감에 실린 기생 박부용

당시 기생 출신 가수들이 폭넓게 활동하였던 시기였고 이 곡의 가수 박부용도 12살이었던 1913년 경성 광교 조합의 기적에 그 이름을 올렸던 한성권번 출신의 기생이었다.

1933년 오케레코드사에 발탁되어 서도잡가'영변가'를 데뷔곡으로 내놓았던 그녀는 그 후 신민요 가수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민요곡을 발표하였다.

어떻든 노래는 나오면서 그 굽이굽이 넘쳐 흐르는 가락의 멋이 자연히 팔이 벌어지고 발이 놀려지도록 흥을 돋워 듣는 이의 간장을 녹이는 듯하여 큰 히트가 되었다.

1950년대 중반 중국에서 발매된 노들강변 연주곡 음반


노들강변은 이후 국악계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한 연주곡목이 되었고 남북이 분단된 이후에는 남과 북에서 모두 즐겨 부르는 노래로 정착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1950년대 중반 노들강변 연주곡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노들강변의 작사가 신불출(왼쪽) / 노들강변의 작곡가 문호월(오른쪽)

오늘날도 이 '노들강변'은 우리의 대표적인 민요의 하나로, 외국 귀빈이 올 때마다 의전용의 연주곡목에 흐르고 있으며, 외국인 또한 우리 고유의 황홀한 선율에 도취한다는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 곡이 구슬픈 가락으로 재현되면 몹시 구슬픈 맛을 풍기며, 반면 흥이나는 가락으로 연주하면 또 몹시도 흥겨워지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 노들강변 (박부용)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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