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라면 한 봉지 값이 없더라도 낭만이 있어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비록 군사정권 시절의 어두운 1980년대이었지만 그 무거운 정신적 부담 속에서도 젊은이들은 풋풋함을 잊지 않고 자유와 낭만과 서정과 청춘의 정열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급속한 세계화의 바람 속에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가수들이 1980년대 등장한다.
이들은 낡은 놋그릇에 낀 푸른 녹처럼 그전의 가요들에 적셔져 있던 마이너의 요소 대신 신선한 생기를 불어넣고 싶어 했다.
먼저 스물두 살의 학생 가수로 중앙대 연극영화과 3학년 때 가수에 데뷔한 최혜영이 있었다. 그녀는 당시 '그것은 인생'이라는 심오한 제목의 노래로 전국을 강타했다.
특히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다. 이 곡은 가요톱텐 5주 연속 골든 컵은 물론 1984년 상반기 최고 인기곡으로도 선정되고 1984년 최다 방송 횟수 1위를 기록하였다.
또 1977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으로 연기자, 가수, MC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김성희'도 있었다. 김성희는 이국적인 외모와 가냘픈 목소리로 수많은 남성 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가수였다.
1981년 7월 MBC <쇼 2000>에서 이덕화와 공동 MC를 맡아 연예계에 데뷔했고, 1982년에는 가수로도 데뷔해 '매력'으로 KBS 신인상 후보에 오른다. 이후로도 6집 앨범까지 내며 '마지막 교정', '세계는 친구' 같은 히트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쾌한 리듬에, 남궁옥분의 청순하고 맑은 목소리가 순수하면서도 웅장한 포크 음악처럼 느껴져 1980년대 초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당시 이 노래는 에어로빅 음악과 응원가 등으로 불리며 젊은 세대들에게 참신한 곡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지금도 누구나 다 아는 애창곡이다.
1980년대의 대중가요는 역시 조용필 시대였다.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비련'을 비롯해 '일편단심 민들레야'와 같은 정통 트로트를 구사했고 포크풍의 '친구여', 강원도 민요 '한오백년'까지 한국 대중가요의 모든 장르를 소화해 냈으며, 조용필을 오빠라 부르는 층도 10대에서 50대에 걸치게 하였다.
그리고 10월이면 어김없이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었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노랫말 중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때문에 1982년 3월 발표한 이래 34년 동안 롱런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용은 1981년 ‘국풍 81 대학가요제’에서 '바람이려오'로 금상을 차지하며 일약 인기 대열에 올랐다. 이후 "잊혀진 계절"을 비롯해 "사랑, 행복 그리고 이별", "태양의 저편" "첫사랑이야" 등을 연속 히트시킨 그는 1982년부터 3년 동안 KBS 가요대상과 MBC 10대 가수상을 휩쓴 최고의 가수였다.
또 대학가요제 출신의 뮤지션들이 모인 한국판 “슈퍼 그룹” '송골매'도 빼놓을 수 없다. 매스컴의 화려한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이들은 “젊음의 행진”이나 “영 일레븐” 같은 청소년 TV 프로그램을 통해 틴 아이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록 음악이 주류 대중음악의 일각을 차지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밴드이다. 또한, 구창모와 배철수를 보컬로 발표한 곡들이 서로 다른 색채를 내면서 인기를 끌었다.
올림픽 등과 관련해서 건전가요로 권장되는 노래도 많았다. 그중에서 방송을 가장 많이 탄 곡은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김연자의 '아침의 나라에서' 였다.
그런데 '아! 대한민국'은 원래 민해경과 김현준이 녹음했지만 민해경이 일본으로 활동무대를 옮기는 바람에 이 노래를 가지고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정수라가 장재현과 함께 이 노래를 다시 녹음해 큰 히트를 했다. 오늘날 '아! 대한민국'의 원조 가수는 김현준과 민해경이다.
그리고 김현준과 민해경이 발표했던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곡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이 곡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 인기곡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청소년들에게 부모에 대한 반항심을 키운다는 주장으로 히트는 했으나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또 꿈속에서 연인과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정유경의 '꿈'도 있었다. 정유경은 깜찍한 외모와 부드러운 창법으로 그 당시 꽤 신선한 이미지로 기억되었던 가수였다
1980년 KBS 쇼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에 출연하던 댄스팀 짝꿍 2기 구성원 출신으로 짝꿍 활동 후 정식 가수로 데뷔 1982년에 '꿈'을 발표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방송' 뮤지컬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였다.
최근 무려 28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이정희'는 지금은 없어진 동양방송 주최 79년 대학가요 경연대회에서 '그대 생각'이란 노래로 금상을 수상 하면서 데뷔했다.
이 후 1980년 10월에 발표 한 '그대여'로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리면서 1981년 한국방송에서 주최한 가요대상에서 여자 가수상을 받았고 문화방송에서 주최한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여자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1980년대 초반을 빛냈던 그것도 반짝반짝 빛냈던 가요계의 은하수였다.
또한 1982년, 당시 불치병을 앓고 있었던 한 소녀 팬의 사연을 가사에 담았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된 ‘종이학’을 크게 히트시키며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전영록은 앳된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198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군림하였다.
특히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폭넓은 인기를 끈 만능 엔터테이너로‘그대 뺨에 흐르는 눈물’ ‘그대 우나 봐’,‘내 사랑 울보’, ’이제 자야 하나 봐’, ‘하얀 밤에’, ‘저녁놀’, ‘추억’ 등의 곡들이 연쇄 히트를 기록하며 1980년대 당대 최고 인기가수였던 조용필에 버금가는 급으로까지 상승하게 된다.
대일외국어 고교 2학년인 17세에 데뷔해 감미로운 목소리와 앳된 용모로 1980년대 10대 소녀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스잔'의 주인공 김승진. 당시 그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음악 프로그램 담당자들이 그를 섭외하려고 집 앞에 장사진을 쳤고, 언론매체의 인터뷰 요청도 줄을 이었다. 1986년에 MBC 10대 가수상과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을 연속으로 수상하면서 꽃미남 고교생 스타의 원조’로 우뚝 섰던 가수였다.
또 김승진과 더불어 80년대 중반 소녀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꽃미남 고교생 스타의 원조 가수였던 박혜성. 그가 불렀던 '경아'라는 곡은 1986년에 발표된 1집 타이틀곡으로 도시의 삐에로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히트곡이었다. 1986년 고3의 나이도 데뷔한 박혜성은 현재 텔레비전, 광고, 영화 음악 등의 프로듀서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긴 생머리에 맑은 목소리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청소년 여가수 이지연은 1988년 가요계에 데뷔해 청순한 이미지와 가창력으로 1980년대 최고의 청소년 스타로 활약하였다.
1984년 MBC 강변 가요제에서 'J에게'로 등장 대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던 이선희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구사하며 록 보컬리스트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발표하는 곡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 명실상부한 스타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마련하였다.
1985년 데뷔앨범을 들고 홀연히 등장, 미디어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은 채 오로지 실력과 라이브만으로 대중음악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주인공들이 있었다. 바로 4인조 록밴드 '들국화'이다. 당시 마력과도 같은 힘으로 음악에 목말라 있던 젊은 대중들을 휘어잡았고, 세련된 외국음악에 익숙해 있던 우리나라의 록 팬들 역시 그들이 내놓은 음악과 그 가능성에 열광했었다.
특히 1980년대 중반의 록음악은 시대적인 요청과 더불어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를 잇는 제2의 르네상스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배출된 그룹으로 '부활', '백두산', '시나위', '신촌 블루스'등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한 느낌이다. 기타리스트 김태원을 주축으로 결성된 “부활”은 보컬 이승철을 영입하여 1집을 발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한, 여린 감성을 담은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주목을 받았던 임병수, 그리고 1980년대 젊은이들의 일상을 풍자해 인기를 얻었던 김혜림의 '디디디', 1980년대 당시 나이트 클럽의 DJ가 '마지막 선곡'으로 한 번씩 열광의 도가니를 만드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였던 이재민의 '골목길'...,
1980년대 유흥문화의 중심지가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가며 유행했던 주현미의‘신사동 그 사람', 지나간 젊은 날의 추억을 노래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대학생들이 주도한 민중가요 운동이 1980년대 후반에 활성화되면서 사랑 받았던'광야에서', '솔아 푸르른 솔아' 등 개방화 시대가 열리던 1980년대에 피어난 새로운 꽃이었으며 우리 사회의 풍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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