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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압록강에 새봄이 오면 들려오는 노래, 이해연 '뗏목 이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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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 이천리'를 부른 가수 이해연이 노래하는 모습 (1960년)

눈 녹인 골째기엔 진달래 피고 / 강가의 버들피리 노래 부르니 / 어허야 어허야 어야디야 ~ 아 ~ / 압록강 이천리엔 뗏목이 뜬다

 

물줄기 구비구비 끝없이 머니 / 낯설은 물새들도 벗이 되었네 / 어허야 어허야 어야디야 ~ 아 ~ / 압록강 이천리엔 뗏목이 쉰다

 

그리워 못잊음듯 신의주 오니 / 인조견 치마감에 가슴 뛰노나 / 어허야 어허야 어야디야 ~ 아 ~ / 압록강 이천리엔 뗏목 닿았네

 

십오야 달밤이면 물새가 울고 / 뱃사공 수심가도 처량하더니 / 어허야 어허야 어야디야 ~ 아~ / 압록강 이천리를 꿈에만 본다 (유도순 작사, 손목인 작곡, 1942년)

 

위 노랫말은 과거 압록강의 명물이었던 뗏목이 흐르는 모습을 표현한 신민요풍의 노래 이해연(1924년 6월 13일 ~ 2019년 12월 10일)의 '뗏목 이천리'이다.

 

압록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이천리를 흘러 서해로 들어간다.

 

그 강 연안은 인적 미답, 천고의 밀림을 이루어 천연 거목의 보고로 일러지고 있다. 한겨울의 추위가 가고 겨우내 꽁꽁 얼었던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봄이 오면, 이 연안에서는 벌목이 한창이었다. 나무들은 강기슭에서 뗏목으로 묶이어,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서해까지 운반된다.

 

나무 자르는 도끼 소리, 톱 소리가 이산 저산에 메아리치고, 뗏목 위에서 바라보는 진달래 핀 강기슭의 경치도 또한 일품이었다. 이러한 정경들은 처음 보는 이에게는 그 아름다움에 도취될 뿐이다.

 

특히 당시 백두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뗏목을 만들어 강 하구의 조선 신의주와 중화민국 안둥(安東)까지 타고 내려오는 벌목꾼들이 명물이었다.

이해연 '뗏목 이천리'가 실린 음반(1942년 콜럼비아 레코드)

 

이 노래는 바로 이러한 풍경을 처음 본 작사가 '유도순'이 그 아름다움에 취해 작사한 것을 손목인이 보고, 그 가사가 그려주는 풍경에 흥미를 느껴 작곡했다. 곡은 민요조의 선율에 간드러진 굴곡이 섞여 아름답고 흥겨워 손목인의 다양한 작곡기교를 나타내는 작품의 하나가 되어있다.

 

이 곡은 1942년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이해연의 목소리에 실려 세상에 나왔다.

 

노래를 부른 이해연은 일제 강점기 말인 1941년 데뷔하여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러 우리를 슬프게 했던 그 가수이다. 그녀는 밴드 마스터 베니 김(김영순)의 아내이자 연안부두를 히트시킨 김 트리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뗏목 이천리'를 부른 가수 이해연이 노래하는 모습 (1960년)

특히 아름답고 흥겨우면서도 압록강의 풍경을 충분히 소화한 이해연의 전통적인 느낌이 드는 창법은 더없이 멋들어져 크게 반응을 일으켰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해연의 노래가 워낙 일품이었던 탓인지 다른 가수가 이 노래를 불러도 그 멋을 내지 못한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서 압록강 기슭에 서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을 생각하면서 도도히 흐르는 물결 위에 뜬 땟목 그림자와 연안의 진달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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