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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희망가' (이 풍진 세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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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 장면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같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

영화 '군함도'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 이강옥(황정민)과 딸 소희(김수안)가 직접 부른 영화의 엔딩 곡 '희망가'는 영상과 절묘한 조화로 관객들에게 여운을 배가 시켜 주기도 했다.

영화 군함도 장면

아빠 이강옥이 딸 소희에게 노래 '희망가'를 부탁하며 눈을 감는 장면과 함께 어우러지는 이 노래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애틋하게 서로를 챙기는 부녀의 영상과 읊조리는 듯 담담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만나 영화의 감동을 더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박채선, 이류색이 전통 민요 창법으로 1920년대에 발표한 '희망가' (이 풍진 세월) 유성기 음반

'희망가' (이 풍진 세월)는 우리나라 가요 초창기에 만들어진 노래이다.

제목은 ‘희망가’이지만 가사는 우울하고 비탄적인 분위기로서, 다분히 식민지 시대의 암울한 사회를 반영해 한탄조의 현실 도피적 염세적인 색채가 짙다.

특히 일제강점기 대중에게 퍼져 불리기 시작한 이 노래는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널리 불리기 시작했다는데, 1922년에 나온 노래집에는 '청년 경계가'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이어서 전국적인 유행에 힘입어 일축(일본축음기 상회)에서 음반으로도 발매되었다.

<희망가>라는 제목으로 녹음한 우리나라 최초의 레코드 취입 가수 채규엽

음반 발매 당시에는 다시 제목이 바뀌어 '이 풍진 세월'로 나왔는데, 시기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1925년 이전에 나온 것임은 틀림이 없으니, 음반에 취입된 것으로는 우리나라 유행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 된다. 문화재청의 대중가요 1호 찾기 목록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희망가'를 열창하는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이정표'

이 노래는 작사자도 작곡자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19세기에 미국 흑인들이 예배 때 부르던 'The Lord into His Garden Comes'라는 제목의 찬송가였던 원곡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채선, 이류색이 전통 민요 창법으로 1920년대에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망가'를 열창하는 안치환

특히 1930년 당시 하세가와 이찌로(長谷川一郞)란 이름으로 일본 노래도 곧잘 불렀던 채규엽이 부름으로써 크게 유행했는데 맨 처음에는 가사 첫구절이 제목 이었으나 채규엽이 <희망가>라는 제목으로 취입하면서 오늘날까지 '희망가'라는 제목으로 애창되는 곡이다.

참고로 채규엽은 가요 초창기 가수의 1인자, 대머리가 일찍와서 무대에 설 때면 머리에 숯을 발랐다는 호쾌한 가수 그는 '봄노래' 등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노래를 곧잘 불렀고 자신이 지은 노래 '고독한 꿈', '유랑인의 노래' 등으로 청중의 가슴을 슬픔으로 메웠다.

'희망가'를 열창하는 가수 이선희

이 풍진 세상…. 그러니까 타민족의 지배를 받는 더럽고 치사한 세상... 이 세상에서 너희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따져 묻는 첫 구절은 이미 저항할 수 없는 고답적인 무게를 가지고 다가선다.

이어 그러한 세상에서 누리는 부귀와 영화, 바로 그것은 천추의 적에 아부하는 친일의 오욕이겠지만, 그러한 부귀와 영화면 족하겠느냐고 다시 따져 묻는 제2의 구절은 더욱 신랄하다. 그러나 여기서 심기일전하여 인류사를 놓고 다시 생각하니 일신의 영욕에 악착하는 인생들이 다시 불쌍해진다,

1980년대 들어 '희망가'를 선보인 포크송 가수 이연실 음반

어느 땐가 역사가 자기를 심판한 날이 있으려니 하는 생각은 꿈에도 못 하고 목전의 소리에만 골몰하는 눈먼 인생들..., 가위 초개같은 인생이 마치도 '일장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구나' 하는 끝 구절에 이르려서는 정말 장탄식을 듣는 듯한 허탈감을 느낀다.

물론 이 노래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오직 염세적인 기분에서만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또 사람에 따라서는 극히 낙천적인 기분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희망가'를 열창하는 장사익

그러나 이것이 불리고 또 대중의 가슴을 때려 애창되던 사회적 배경이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여기서 뼈에 사무치고 하늘을 찌르는 우국충정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곡도 또한 가사에 못지않게 장중하고 침울하다.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듣고 있으면 수천 근 큰 바위가 가슴을 누르는 듯한 중압감을 느끼기가 일쑤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러기에 더욱 자기를 버리고 대의에 살아야 하며 초개같은 자기의 생명이나 티끌 같은 영리를 벗어나서 민족과 국가에 봉사해야 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용솟음침을 느낀다.

따지고 본다면 이러한 것이 바로 당시의 남녀노소가 연령의 차이 없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고, 눈물을 흘리며 잃어버린 주권의 회복을 다짐하는 암묵의 맹세를 만들게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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