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급률이 낮던 6, 70년대 극장 쇼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쇼’가 있는 날은 온 동네가 술렁거렸고 특히 극장 안은 쇼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종아리까지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실내에서 담배를 빠끔빠끔 피워대는 젊은이들, 현란한 조명 속에서 벌어지는 인기 가수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구경 온 학생들.
그리고 아주머니들은 노래 한마디도 놓칠까 봐 칭얼대는 아기의 오줌을 객석의 복도 아무 데서나 보게 해서 지린내까지 극장 쇼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당시 극장 쇼의 백미는 유명 가수의 순서이지만 극장 쇼의 진정한 스타는 소위 ‘양아치 클럽’이라 불리는 정원, 쟈니리, 트위스트 김 이었다.
무대에선 정장을 하는 게 통념이던 시절 청바지를 즐겨 입었던 이들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가운데 가수 정원이 ‘허무한 마음’을 똑똑 끓어 나가는 듯한 독특한 창법으로 열창하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마른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지난 가을날/사무치는 그리움만 남겨놓고 가버린 사람/다시 또 쓸쓸히 낙엽은 지고/찬서리 기러기 울며 나는데/돌아온단 그 사람은 소식 없어 허무한 마음
위 노랫말은 전우 작사, 오민우 작곡으로 1960년대 솔발라드 스타였던'정원'에 의해 불린 '허무한 마음' 이다.
정원은 1960년대 극장쇼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가수로 '허무한 마음'은 1965년 발표된 그의 출세작이다. 반주는 미8군에서 활동하던 4인조 그룹 샤우더스가 맡았다.
1965년 여름 서울 운동장 뒤편 대도 레코드 녹음실에서 <정원>의 목소리로 녹음 예정이 었던 <허무한 마음>은 원래 다른 작사가의 노랫말이 붙여져 있었지만 녹음 당일, 작곡가 오민우는 그 가사가 마음에 차지 않아 아리랑의 기자였던 <전우> 에게 술을 사겠다는 유혹의 말로 불러낸다.
녹음실에 들어선 작사가 '전우' 를 반갑게 맞은 오민우는 기존 작사로는 디스크 만들 의욕이 없으니 새로운 작사를 부탁한다.
그제야 사정을 알게 된 '전우' 는 두고 온 아리랑 일이 맘에 걸렸지만, 곧 승낙했다.
'전우'는 오민우가 쳐주는<허무한 마음> 의 멜로디를 가슴에 담았다.
단순한 흐름의 곡조는 절제 된 사랑의 미학으로 뜨거웠지만, 그 소리가 빚어내는 허무의 공간이 무한히 열려 나가고 있었다.
마른 잎이 한잎 두잎
떨어지던 지난 가을날
사무치는 그리움만 남겨놓고
가버린 사람
다시 또 쓸쓸히 낙엽은 지고
찬 서리 기러기 울며 나는데
돌아온단 그 사람은
소식 없어 허무한 마음
<허무한 마음>은 이렇게 탄생한다. 초여름에 만들어졌지만, 디스크 발매는 가을이었기에 계절도 맞았고 소울풍의 창법을 지닌 정원의 똑똑 끓어 나가는 듯한 독특한 어법이, 귀가 솔깃해지는 허스키 음성에 실려 대중들에게 어필해 나갔다.
특히 <정원>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더해져 <허무한 마음>은 1960년대 가요 사에 커다란 히트 곡으로 남게 된다. 이후 정원은 극장쇼에서 빠지면 안 되는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 정원 '허무한 마음'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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