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가수 권혜경(1931년 11월 12일 ~ 2008년 5월 25일)은 당대의 톱스타, 눈높은 독신녀였다.
가냘픈 체격의 청순미로 사내들 마음을 뛰놀게 했고,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알아주던 시절 조흥은행을 그만두고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가수모집에 응시, 전속가수 3기생으로 발탁된다.
이후 1957년 '산장의 여인'으로 데뷔한 뒤 한때 가수 생활과 일요신문의 기자직도 겸업한 화려한 이력의 가수이다.
그러나 그녀는 뭇 남성 팬들에게 꿈만 먹고사는 공주님으로 비쳤지만, 사실 그녀도 아팠던 첫사랑의 상처가 있었다고 한다.
첫 연인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으나, 지닌 것이라곤 가난밖에 없었다.
그래서 뭇사람이 데이트하느라 커피를 마시고 나면 자기의 두무릅사이에 작게 접은 천 환짜리를 끼워 탁자 밑으로 전달했고, 그는 그 돈으로 찻값을 내며 얼굴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첫 연인에게는 집안 어른들이 어린 시절 정해준 배필이 있었고 어느 날 그 여자가 권혜경을 찾아와 그사이의 모든 사정을 알리고 간 뒤, 두 사람은 하는 수없이 등을 돌려야 했다.
물론 그 후에도 권혜경의 집 앞을 서성거렸지만 권혜경은 더는 그를 받아들여지 않아 던 것이다.
당시 이 첫사랑의 얘기가 <사랑은 가고 노래만 남아>란 제목으로 아리랑 잡지에 실린 뒤, 권혜경의 팬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 있네/세상에 버림 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권혜경 노래.1957년 발표)
위 노랫말은 그녀 나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산장의 여인' 이다.
권혜경하면 '산장의 여인'이었고 '산장의 여인'하면 권혜경으로 통할만큼 권혜경의 대표 히트곡으로 알려져있다.
이 곡은 반야월 선생이 시를 쓰고, 이재호 선생이 곡을 붙인 콤비 작품이다.
작사자 반야월 선생이 마산방송국에 재직 시 국립 마산 결핵 요양소에 위문공연을 갔을 때 한 모퉁이에서 흐느끼고 있는 미모의 여성에게 눈이 끌렸다.
공연 후 그 사유를 알아본즉 결핵 환자로서 외로운 산장에서 회상에 잠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알았다. 이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여 지은 것이 이 노래였다.
당시 이 슬픔의 노래는 특히 화류계에서 크게 유행했었다. 유흥업소의 여성들이 자신에게 낙착된 어둡고 슬픈 운명을 <산장의 여인>이라는 대상을 통해 발견했던 것이었다.
그 후 이 노래를 부른 "권혜경"도 노랫말처럼 병마로 인해 고독한 세월을 홀로 보내는 쓸쓸한 삶을 살았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곡이다.
산장의 여인 - 권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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