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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10대 어린 소녀의 감성을 섬세하게 표현한 명곡, 조애희의 내 이름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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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애희 음반 오아시스, 1974년

1961년 5.16이 일어나면서 군사정부의 좀 더 밝은 분위기를 조성시키고자 하는 생각과 맞아 당시 가요계에도 새로운 전환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참신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선 가요라면 애수적이고 회고적이며 비가적이어야 한다는 식의 관념에서 탈피하며, 좀 더 밝고 쾌활하며 발랄하고 생기 있는 현대풍의 가요를 만들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수 조애희 1960년대 활동 모습


그러나 음반 판매량으로 그 인기를 가늠질하는 가수나 작곡가는 역시 대중에 먹혀들어 가기 쉬운 비가 조의 슬픈 선율에 매달리기 일쑤여서 새로운 맛의 건전한 가요가 나타나도 꺼리는 형편이었다.

막상 방송국에서 건전한 가요의 가사를 모집하고 또 작곡해도 부르기를 즐기는 가수가 없는 현실….그래서 이러한 것을 해결하는 한 방편으로 전속가수 제도가 마련되었다.

가수 조애희 1960년대 활동 모습


말한다면 굳이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뛰어다니지 않아도 괜찮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바로 이 '내 이름은 소녀'는 작사자인 하중희가 전속가수를 위한 신곡을 만들어 주자는 KBS의 요청으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KBS한국방송 가요무대에서 '내 이름은 소녀'를 열창하고 있는 가수 조애희

내 이름은 소녀 꿈도 많고/ 내 이름은 소녀 말도 많지요/ 거울 앞에 앉아서 물어보면은/ 어제 보다 요만큼 예뻐졌다고/ 내 이름은 소녀 꽃송이 같이/ 곱게 피면은 엄마 되겠지

내 이름은 소녀 꿈도 많고/ 내 이름은 소녀 샘도 많지요/ 거리 거리 쌍쌍이 걸어가면은/ 내 그림자 깨워서 짝을 지우고/ 내 이름은 소녀 꽃송이 같이/ 곱게 피면은 따라오겠지 아~ 아~

마치 10대 어린 소녀의 종알거림과도 같이 천진하고 귀엽기만 한 이미지의 이 가사는 역시 10대의 소녀들이 마음 놓고 부르고 또 즐길 수 있는 가요가 너무 없다는 데에서 그가 애써 만든 것이었다.

가사는 당시 KBS 악단장이며 지휘자로 있던 김인배에게 넘겨졌고 깡충깡충 뛰는 소녀의 행복한 꿈과도 같이 즐겁기만 한 곡으로 탄생을 보았다.

조애희의 '그사람 바보야' 음반

1962년 당초에는 은종합창단에 의한 방송 가요로 소개되었던 이 노래는 1964년 조애희가 KBS 전속가수로 들어오면서 그녀의 독점적인 레퍼토리가 되다시피 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65년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음반이 나오자 크게 히트, 당시 10대들이 즐겨 부른 노래가 되었다.

KBS한국방송 가요무대에서 '내 이름은 소녀'를 열창하고 있는 가수 조애희

특히 당시 유행가라면 학생들에게 못 부르게 했던 시절이었는데 '내 이름은 소녀'는 학교에서 부르게 했던 노래 중의 하나로 노랫말 처럼 여학생들은 손거울을 갖고 다니던 게 유행이었다.

조애희 힛트집 음반

가수 조애희는 1944년생으로 1960년대 소박하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뭇 남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인데 목가풍의 노래를 잘했다.

전문적인 교육 없이도 당당히 KBS 전속가수가 되었고 감미로운 음색은 사람을 묘하게 이끄는 매력이 넘쳤던 가수였다.

내 이름은 소녀 - 조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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