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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실향민의 망향가 한정무의 ‘꿈에 본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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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 리 /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고향을 떠나온 지 몇몇 해던가 /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메는 이 몸 /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꿈에 본 내 고향 음반

위 노랫말은 전후 실향과 이산의 아픔을 표현한 곡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가장 많이 끌었던 작품 ‘꿈에 본 내 고향' (박두환 작사/ 김기태 작곡/ 한정무 노래)이다.

이 노래는 6·25전쟁 당시 피란으로 고향을 떠나 살면서 고향을 그리워한 나머지 ‘꿈에서라도 고향을 보고 싶다’는 내용의 노래로 당시 피난민들에게 널리 불리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 무렵의 부산은 피난민으로 초만원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고향에 대한 사무친 향수로 피난민들은 하루하루를 죽은 목숨처럼 살아가던 때였다. 

 

최신 꽃다발 가요집에 수록된 '꿈에 본 내 고향' 가사. 1955년 간행


당시 부산의 뒷골목 선술집에는 절망과 회의의 한숨이 이 노래와 함께 수놓아졌다. 장단을 맞추어 가며 때로는 서로 부둥켜 안고 이 노래를 합창했다. 이 노래야말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겪었던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의 기념비라 할 만하다. 

 

특히 1951년 1.4 후퇴 이후 이북 동포들이 대거 남하하면서 시류와 맞아 떨어져 입에서 입으로 불리면서 큰 인기를 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 고향을 떠나 온 지 몇몇 해려냐/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곡조는 무척 애상조이다. 노래가 이토록 슬프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가사가 말해 주는 사실 그대로이다. 작사자인 박두환은 악극 '진주라 천리길',울며 헤어진 부산항', 영화'피는 살아있다'의 작가이다. 

'꿈에 본 내 고향' 후속작으로 발표된 '찾아본 내 고향' 가사지


노래는 1943년 문일화가 무대에서 처음 불렀다고 한다. 이후 가수 송달엽이 불러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던 것을 1951년 부산에서 도미도 레코드를 운영하던 한복남이 음반으로 제작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가수는 함북 나진 출생으로 부산에 홀로 피난 내려온 한정무. 그는 이미 1938년 빅타레코드사에서 ‘대동강 달밤’(오준희 작사, 형석기 작곡)을 발표한 적이 있는 가수였다. 

 

가수 한정무

평남 안주 출생으로 도미도 레코드의 설립자였던 한복남과는 대중음악계의 친밀한 동지이자 같은 월남 실향민의 처지였다. 늘 국제시장 부근을 돌아다니며 유성기 바늘과 음반을 팔면서 힘겨운 피난 생활을 이어갔다. 

1960년 교통사고로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그는 이 노래와 함께 아마도 우리 가요사에서 영원히 남을 만한 존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야말로 우리 민족이 당면했던 가장 어려운 시절에 그 아픔과 그 절망을 노래로써 증언한 증언자인 때문이다.

 

▶ '꿈에 본 내 고향' ( 한정무 )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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