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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묵직한 저음이 매력적인 가수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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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저음이 전혀 무겁지 않았던 가수 문주란의 전성기 시절 모습

묵직한 저음이 전혀 무겁지 않았던 가수 '문주란'. 그녀의 본명은 문필연이다.

 

부산 서면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문필연은 부산의 술 잘하고 유명한 한량 아버지가 이제 딸을 그만 낳았으면 해서 마칠<필>, 연꽃<연>이 합해진 이름이었다.

 

14세에 데뷔한 그녀는 부산 서면에서 태어나, 성지초등학교와 동래여중을 나오고 서울로 올라와서 성만 여자상업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때 작사가 전우의 눈에 띄어 가요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작사가 <전우>는 가냘프지만 예쁘게 꽃망울을 터뜨리며 살아가는 문주란꽃이 필연에게 잘 어울린다며 예명을 '문주란' 이라 지어줬다.

문주란 음반 표지

윤기 없는 목소리에 지독한 허스키, 그리고 명랑한 빛깔은 찾을 수 없이 심각한 분위기를 표출하는 것이 문주란의 노래였다.

 

특히 한국가요계의 내면적인 존재로서 그녀의 음악성은 당시 한몫을 당당히 해낼 것으로 믿어졌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문주란은 1966년 백영호 작곡가의 영화 주제가 <동숙의 노래>를 발표한다.

 

하얀 드레스에 보랏빛 조명이 떨어지면 미동도 하지 않은 자세로 그 커다란 검은 눈망울만 깜박이며 '동숙의 노래'를 불렀다.

 

모든 극장 쇼에는 문주란의 이름과 사진이 큼직하게 들어가야 흥행할 수 있었다. 단 한 시간의 정식가요 수업을 받은 적도 없지만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숙의 노래'로 전국 무대에 데뷔하면서 대중에 각인됐다.

동숙의 노래가 실린 가수 문주란의 음반 표지.

한때 <동숙의 노래>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1.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 / 원한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 때는 늦으리

 

2.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 그대 따라 못가는 서러운 이 몸 / 저주받은 운명에 끝나는 순간 /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 뜨거운 눈물

 

등의 가사 때문이었는지 동숙이라는 여자가 학원 선생님을 짝사랑해 뒷바라지하다가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람이 배신하자 남자에게 칼을 들고 복수하려다 실패하고, ‘살인미수죄’로 복역하게 된다는 실제 살인사건이 노래 소재였다는 등 여러 가지 루머가 많았다.

 

하지만 '동숙의 노래' 는 1966년 남궁원, 김석훈, 이대엽, 태현실 주연의 영화 '최후전선 180리(1966, 감독 임원직)'의 주제곡으로 밝혀졌다. 그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 바로 '이동숙'이었다.

1966년 남궁원, 김석훈, 이대엽, 태현실 주연의 영화 '최후전선 180리(1966, 감독 임원직)

특히 '동숙의 노래'로 등장한 문주란은 한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저음의 소녀 가수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최고의 가수는 동백 아가씨의 이미자였지만 가성의 여자 목소리와 차별화된 매력적인 허스키 목소리로 문주란은 10대 소녀가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 홍수처럼 히트곡이 쏟아져 나왔다. "공항의 이별", "타인들", "내 몫까지 살아주", "돌지 않는 풍차" ,"백치 아다다", "낙조" 등 2,000여 곡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제일 즐거웠던 게 철없이 기뻐하던 데뷔 시절이라고 한다. 남이 알아준다는 게 무조건 즐겁기만 했던 사춘기 소녀 시절을 오늘도 그녀는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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