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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빛낸 유행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쟈니리 ‘뜨거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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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 음반 표지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가신다면 헤어 집시다/ 아프게 마음새긴 그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울음이 나도/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뜨거운 안녕’은 1966년에 발표된 쟈니 리의 출세작이다.

이보다 앞서 이 곡의 작곡자인 '서영은'은 무더운 초여름에 서울 시내 체부동의 2층 방에서 이 노래의 주제를 잡아놓고 연습을 거듭하여 다듬었다.

소리높여 매일 "뜨거운 안녕"하는 통에 동네에서는 시끄럽다고 진성서를 돌려 파출소에 냈다.

진정서를 받아든 경찰은 작곡자를 찾아와 주민들의 신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습을 삼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것은 작곡자에게 음악을 버리라는 말과 별 차이 없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찌는듯한 한낮의 더위 속에서도 꼼짝없이 문을 닫고 땀을 흘려가며 연습을 했다.

이렇게 '뜨거운 안녕'은 뜨겁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곡은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여자를 돌려보내고 남자는 밤마다 울음이 나도 참으며 남자답게 그녀를 향해 뜨겁게 안녕히 하고 이별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남자의 허약함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곡은 출반되자 곧장 히트로 돌입, 뜨거운 안녕은 뜨겁게 작곡되고 또 뜨거운 속도로 당시로는 꿈의 수치인 35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이때의 에피소드. 인천에서 어느 연인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여 동반자살을 하였는데 유서 대신 ‘뜨거운 안녕’ 가사를 적어놓고 숨을 거두어 세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이 노래는 더욱 유명세를 탔다.

그 여세로 67년에 후속음반을 발표하였으나 ‘뜨거운 안녕’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후일담은 차중락 최고의 히트곡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쟈니 리가 부르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차중락에게 선뜻 양보하였다 한다. 그 역시 동병을 앓고 있었기에 상련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뜨거운 안녕’의 공전의 히트로 아리랑 잡지의 독수리 상, 동아방송, 각종 주간지의 가요상을 수상한 그는 정상의 가수로 떠올랐다.

이후 쎄시봉과 뒤세네에서 열렸던 이종환의 ‘한밤의 음악 편지’ 공개 방송에 단골 출연을 했다.

‘센티멘탈 리’로 불릴 만큼 고독한 성격의 그는 지금도 출세곡 ‘뜨거운 안녕’을 부를 때 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 듣기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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