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세워 놓고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끝끝내 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안타까운 남자의 심정을 슬프게 호소하는 노래이다.
1957년 오아시스 레코드사가 불황에 허덕이는 가요계를 향해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노래이다.
당시 인기 절정의 작곡가 손석우가 흐느끼는 듯 낮은 손시향의 저음을 기용하여 아무런 부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역량을 보여준 사랑의 소품이다.
또 당시 활동했던 김성옥, 블루벨즈, 한명숙 등 내로라하는 톱 가수들이 저마다의 특성 있는 음성으로 자신의 위치를 굳히기 위해 항상 고정된 곡목을 가진 노래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누구나 가수라는 꿈을 안고 있는 사람이면 언제 어디서고 오디션 곡으로 '검은 장갑'을 불렀다.
땅콩을 씹으며 눈 내린 고궁의 뒷담 길을 걸으면서, 아니면 호젓한 공원의 텅 빈 벤치에서 지나간 날의 연인을 마냥 그리워하면서 가만히 입속으로 뇌어보는, 마치 감미로운 사랑의 한 장면을 연출한 듯싶은 '검은 장갑'이야말로 영원한 명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가지 덧붙여 '검은 장갑'에 얽힌 얘기라면 이 노래가 한창 히트하면서 각 백화점은 물론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의 검은 장갑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한때 검은 장갑을 낀 여자가 아니면 사랑의 참맛을 모를 거라고 했다.
특히 전국 어디서고 검은 장갑의 유행이 등등했으니 대중가요 덕분에 장갑 장수가 살판이 났던 때가 있었다고 할까? 하여튼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격으로 수없이 팔리는 레코드에 곁들여 검은 장갑도 팔려 나갔다.
손시향은 1938년 손용호라는 이름으로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서울 농대를 나왔다.
고교 동창인 강신영이 영화배우로 성공하여 신성일이란 이름을 드날리자 자신도 영화배우를 꿈꿨으나, 대학 재학시절 KBS 노래경연에 참가했다가 입상하는 바람에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1958년에 손석우의 회심작 <검은 장갑>으로 데뷔하자마자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른다. 훤칠한 외모와 샹송풍의 부드러운 음색으로 “한국의 이브 몽땅”이라는 수식어까지 얻는다.
이후 <검은 장갑>의 여세로 <비 오는 날의 오후 세시>(59년) <이별의 종착역>(60년)을 연이어 히트시킨다.
■ 검은 장갑 (손시향)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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